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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도종환 시인의 <단풍드는날> 을 다시 읽었다.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두고
"내려 놓음","집착을 버릴때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해석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왠지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는 순간"이 떠올랐다.
- 자식을 품에 안고 키워온 시간
- 자식이 내 삶의 이유였고, 내 전부였던 시간
-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식을 세상에 보내야 하는 때
그때 부모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 이 아리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정말 이 아이를 위한 걸까?
자식을 '내려 놓는다는 것'
요즘 많은 부모들은
"세상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불안해서 그렇다"는 이유로,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자식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붙잡는것이 아니라 놓아줘야 하는것이 아닐까?
자식을 놓아주는것이
자식이 멀어지는것이 아니라,
자식이 커지는것이 아닐까?
놓는 순간이야 말고, 부모가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아닐까?
10년 전, 제대를 하면서 부모님이 나를 놓아주셨다.
2년 전,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는 부모가 되었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그래서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에서
단풍을 자식,
나무는 부모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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